주일예배 설교

70. 복음은 이해와 사랑으로 전해집니다 (행 16:1-5)

우인택 목사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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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 “나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툼을 만드는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 교회의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어’ 갈라진 이후, 바나바는 배를 타고 구브로로 향하고, 바울은 육로를 이용하여 제1차 전도여행 당시 맨 나중에 들렀던 ‘더베와 루스드라’로 향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두사람 중에서 ‘바울의 전도여행’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제2차 전도여행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 본문이 ‘바울의 사역’ 자체보다는 디모데와의 만남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훌륭한 사역자로 성장한 디모데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많은 이바지한 까닭으로 여겨집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습니다. 보통 생각하기를 혼혈아가 그가 태어난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를 ‘제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2절 함께 읽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이웃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디모데가 바른 신앙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에게도 많은 선행을 베풀었음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성도가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꾼이 되기를 원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되지, 사람의 평판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깊이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는 성도는 대체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기에 힘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이웃에게 사랑과 선을 베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듣게 됩니다. 

일례로,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 중에서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칭찬받았습니다. 다윗은 온 백성에게 존경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백성들에게 칭송받았습니다.

물론,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러한 자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미움과 박해와 따돌림은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지금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웃은 복음에 대하여 중립적인 사람들입니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다면, 나의 신앙이 독선적이기 때문일 수 있고, 이기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덕이 부족하고 사랑이 메마른 까닭일 수도 있습니다. 완고하고 인색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러한 성도는 아무리 큰일을 해도 하나님은 물론, 사람들로부터도 진정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좋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삶에서도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은 물론, 이웃에게도 칭찬받는 진정한 성도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에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 여인인 어머니가 '율법에서 금한' 이방인 남자와 결혼한 외적인 악조건 속에서 태어난 디모데가 칭찬받는 제자가 된 데에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바울의 영향이 컸습니다. 디모데전후서에 기록된 것처럼, 디모데 역시 마가 요한 못지않게 연약한 부분이 있었지만, 바울은 과감하게 제자 디모데를 제2차 전도여행에 동참시켰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결단이 더욱 성숙한 신앙인 디모데를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디모데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한 것에 대하여 그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디모데후서 1:5에 의하면, 그 공로를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돌렸습니다. 디모데가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바울의 영향만이 아니라, 스승 바울 이전에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와 믿음의 할머니 ‘로이스’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좋은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보다 낫고, 어떠한 마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빼앗지 못한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격언에 동의하십니까? 물론, 빗나간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기도 시간이 몇 년, 몇십 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신앙을 헛되이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선한 열매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음을 여러 부분에서 증언합니다. 믿음의 아들 ‘이삭’ 뒤에는 거룩한 부녀라 불리던 어머니 ‘사라’가 있었습니다. ‘모세’ 뒤에는 용기 있는 믿음의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뒤에는 눈물로 기도하던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 어거스틴’ 뒤에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고, ‘존 웨슬리’ 뒤에는 그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뒤에는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믿음이 자녀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듦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머니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공하는 자녀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여느 어머니 못지않습니다. 자녀를 잘되게 하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치맛바람’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어머니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다닌다고 자녀가 위대하게 될까요? 사교육비를 많이 들인다고 위대하게 될까요? 교만한 지식인은 될지 몰라도 위대한 믿음의 사람, 위대한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사람 뒤에는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믿음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믿음에 바로 서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른 믿음을 가르치고 바른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이것을 외면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실제로 종종 보고 듣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녀가 고3이라는 이유로 예배를 쉬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신앙을 보고 자라는 그 아이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위대하게 자라겠습니까? 위대하기는커녕, 바르게 자라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인재로 자라기를 원하신다면 부모된 여러분들이 먼저 바른 신앙을 갖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입니다. 

오늘부터 부모로서의 바른 역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와 믿음의 할머니 ‘로이스’처럼 자녀를 믿음의 선한 삶으로 인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어지는 3b절을 계속 함께 읽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바울은 헬라인 아버지를 둔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 출신 성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음을 상고했습니다. 우리는 그 일로 인해 바울이 얼마나 힘쓰고 노력했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할례 여부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을까요? 복음을 전하면서 만나게 될 유대인들이 두려워서일까요? 아니면 그의 소신이 바뀌어서일까요? 

여기에는 보다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디모데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거칠 것이 없는 교회 지도자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할례가 복음전파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지로 택한 곳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출신 성도들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또, 아직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자와는 아예 교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과 함께 전도할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어느 유대인이 디모데의 전도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또, 어느 유대인이 디모데를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할례라는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불가피하게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영혼을 구원하려는 방편이었기에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면 복음전파의 방법에 대해서는 언제나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되었습니다(고전 9:20).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니, 4-5절 함께 읽습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바울의 이 유연성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또 그렇게 시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정해진 규례가 없습니다. 전도 대상자의 처지와 상황, 문화 등을 고려하여 유연성 있는 방법으로 전도할 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나친 규례로서의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가장 선한 믿음의 길을 찾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올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디모데처럼 이웃에게 칭찬받는 삶을 사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유니게와 로이스처럼 자녀들에게 믿음의 선한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바울처럼 복음의 본질을 지키되,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사랑과 이해로 다가가는 유연한 마음을 가진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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