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어제 우리는 맹세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개인의 어려움으로 두지 말고 ‘속히 교회에 알려’ 교회공동체가 함께 기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도 계속되는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병든 자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알고 계십니까? 야고보서는 1장으로부터 계속해서 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절대적인 신뢰’를 기초로 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를 가진 자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간절한 기도의 실제를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면, 예수님을 적대시하던 유대교의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려고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눅 8:40-42). 당시 이단으로 취급당하던 예수님 앞에 유대교 회당장이 엎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아주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딸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또, 한 가나안 여인의 경우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흉악한 귀신이 들어 괴로워하는 딸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마 15:22-28).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며 비인격적인 말로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그때 가나안 여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존심까지 버린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고백에 감동하시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경은 이외에도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막 2장).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간절함을 물질로 표시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빈손으로 오는 자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시므로 많은 헌금을 드리는 정성을 보이라며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 응답의 조건으로 우리의 노력이나 물질 등을 조건으로 삼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는 누가복음 8장의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에게 어떤 물질도 바치지 않았고 통성 기도는커녕 작은 소리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깃을 뒤에서 만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함과 믿음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 밀고 밀리며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간절한 마음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에게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있었던 간절함과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어떤 외적인 행위보다 마음을 정결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과 간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때,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게 됩니다(삼상 16:7). 오늘,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계속해서 15절을 보면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성도의 질병을 죄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모든 질병이 죄로 말미암는 것만은 아닙니다.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날 때부터 맹인된 자의 병의 원인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요, 그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함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9:1-3).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럼에도 질병의 대부분이 죄로 말미암음으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돌아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을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완전한 의인이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10). 그러므로 여기서의 ‘의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뜻이 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이 되고, 그를 힘입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19절 함께 읽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의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오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로 내린 비는 홍수로 온 땅이 잠겨 큰 피해를 주는 비가 아니고, 반대로 해갈에 부족할 정도의 적은 비도 아닌 농작물이 자라기에 적당할 만큼의 비였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통해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던 엘리야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재였습니까?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왕상 19:1-8). 이것은 우리 성도들도 바른 믿음만 가지면 누구든지 엘리야와 같은 능력의 기도를 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기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17절에서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한즉’입니다. 이는 헬라어 ‘프로슈케 프로세윅사토 προσευχῇ προσηύξατο’를 번역한 것으로 직역을 하면 ‘기도로 기도한즉’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기도로 기도하는 것’이 됩니까?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자면,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기도할 때,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42절). 이는 기도할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계속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일곱 번이나 이러한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손바닥 크기의 구름이 일어나 점차 하늘을 덮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도 응답에는 ‘의로운 삶’ 위에 ‘온 마음을 다한 간절함’이 더해져야 함을 교훈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적당주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듯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응답받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의로운 삶’ 위에 ‘온 마음을 다한 간절함’이 더해져야 함을 알아 예수님의 의로움을 본받기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과 간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로 기도’함으로 응답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화요일: 검지손가락 기도> 검지는 무엇을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교사들, 이 땅의 선생님들,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성결함으로 모든 삶을 드리는 ‘소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어제 우리는 맹세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개인의 어려움으로 두지 말고 ‘속히 교회에 알려’ 교회공동체가 함께 기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도 계속되는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병든 자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알고 계십니까? 야고보서는 1장으로부터 계속해서 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절대적인 신뢰’를 기초로 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를 가진 자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간절한 기도의 실제를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면, 예수님을 적대시하던 유대교의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려고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눅 8:40-42). 당시 이단으로 취급당하던 예수님 앞에 유대교 회당장이 엎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아주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딸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또, 한 가나안 여인의 경우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흉악한 귀신이 들어 괴로워하는 딸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마 15:22-28).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며 비인격적인 말로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그때 가나안 여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존심까지 버린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고백에 감동하시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경은 이외에도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막 2장).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간절함을 물질로 표시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빈손으로 오는 자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시므로 많은 헌금을 드리는 정성을 보이라며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 응답의 조건으로 우리의 노력이나 물질 등을 조건으로 삼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는 누가복음 8장의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에게 어떤 물질도 바치지 않았고 통성 기도는커녕 작은 소리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깃을 뒤에서 만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함과 믿음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 밀고 밀리며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간절한 마음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에게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있었던 간절함과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어떤 외적인 행위보다 마음을 정결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과 간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때,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게 됩니다(삼상 16:7). 오늘,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계속해서 15절을 보면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성도의 질병을 죄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모든 질병이 죄로 말미암는 것만은 아닙니다.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질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날 때부터 맹인된 자의 병의 원인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요, 그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함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9:1-3).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럼에도 질병의 대부분이 죄로 말미암음으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돌아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을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완전한 의인이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10). 그러므로 여기서의 ‘의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뜻이 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이 되고, 그를 힘입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7-19절 함께 읽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의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오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로 내린 비는 홍수로 온 땅이 잠겨 큰 피해를 주는 비가 아니고, 반대로 해갈에 부족할 정도의 적은 비도 아닌 농작물이 자라기에 적당할 만큼의 비였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통해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던 엘리야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존재였습니까?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왕상 19:1-8). 이것은 우리 성도들도 바른 믿음만 가지면 누구든지 엘리야와 같은 능력의 기도를 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기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17절에서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한즉’입니다. 이는 헬라어 ‘프로슈케 프로세윅사토 προσευχῇ προσηύξατο’를 번역한 것으로 직역을 하면 ‘기도로 기도한즉’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기도로 기도하는 것’이 됩니까?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자면, 엘리야는 비가 오기를 기도할 때,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42절). 이는 기도할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계속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일곱 번이나 이러한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손바닥 크기의 구름이 일어나 점차 하늘을 덮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도 응답에는 ‘의로운 삶’ 위에 ‘온 마음을 다한 간절함’이 더해져야 함을 교훈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적당주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듯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응답받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의로운 삶’ 위에 ‘온 마음을 다한 간절함’이 더해져야 함을 알아 예수님의 의로움을 본받기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과 간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로 기도’함으로 응답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화요일: 검지손가락 기도> 검지는 무엇을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교사들, 이 땅의 선생님들,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성결함으로 모든 삶을 드리는 ‘소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