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오늘 본문은 맹세할 때와 기도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성경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하셨을 때, 자신만은 결코 그리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험이 닥쳐오자 예수님을 부인하되 저주까지 하는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맹세의 결심보다 더 큰 두려움이 닥치면 맹세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게 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맹세의 무게보다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울 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맹세를 지키지 않습니다. 또, 맹세를 지킴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맹세를 어길 때 얻는 이익이 더 클 때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며 너무 쉽게 맹세를 어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로 인해 이 세상은 맹세조차도 믿을 수 없는 불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교회 직분이나 신앙을 걸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도 거짓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본인의 명예는 물론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형태의 맹세들은 모두 악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5:37).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무분별하게 맹세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진실과 거짓을 밝힘에 있어서도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것들을 끌어들여 구차한 수식어를 달지 말고, 오직 정직한 태도로 ‘예’와 ‘아니오’를 진정성 있고 명료하게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한계를 아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신이 한 약속과 맹세에 대하여 돌아보고, 신실한 믿음의 삶을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이 말씀에는 우리 성도의 삶 가운데에는 형통하고 기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슬픔의 때도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성도라고 하여 마냥 축복만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낮과 밤이 교차하듯이 성도의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고, 사막의 길을 갈 때도 있고, 오아시스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도로서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매우 심각하게, 그것도 명령하는 어투로 권면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고난과 슬픔을 당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자기 연민이나 원망,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형통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기보다는 자기 자랑에 빠지거나 교만, 안일에 빠져 오히려 하나님을 잊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이 말씀을 매우 심각한 어투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이 신앙의 기본이 몸에 배도록 계속해서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신앙의 기본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초석이며, 첩경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앙을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든 자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함을 받은 장로들은 거절하지 말고 즉시 달려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교회의 장로’는 교회공동체를 대표하고 믿음과 은혜에 있어 신실한 중직자들을 지칭합니다. 그와 더불어, 가능하다면 여러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을 초청하라는 뜻으로도 이해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러한 심방을 통해 한 성도의 고난을 온 교회가 알고,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느 성도가 질병과 같은 고난이나 불행을 당하면 주변의 모든 믿음의 성도들은 그를 위해 한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을 갈라디아서 6:2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쁘고 축하받을 일이 있으면 이를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고난과 불행한 일을 당하면 이를 숨기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행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매 맞았나 하며 오히려 쉬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기쁜 일 당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가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 역시, 기쁜 일 만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가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의 기쁜 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은 때로 무심히 지나쳐도 흠이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지체된 형제자매의 고난과 불행만큼은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점은 교회의 중직자일수록 더욱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중직자일수록 교회 내의 어려운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피고 돌보아야 할 더 큰 책임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한 성도의 고난과 불행은 곧 모든 믿음의 지체들을 한자리에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험을 축복의 신호탄으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하나님의 치유와 기적과 축복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시험과 고난으로 인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시험과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고사하고 만날 수조차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고난을 만났을 때 이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교회에 알리고 교회공동체 역시 이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함께 아파하고 기도함으로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선포하신 가장 기본적인 은혜와 축복의 법칙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우리 교회가 이러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무분별하게 맹세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신앙의 기본자세를 가지되, 성도의 고난과 불행은 믿음의 지체들을 한자리에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 서로를 위해 늘 기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오늘 본문은 맹세할 때와 기도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먼저, 12절 함께 읽습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성경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하셨을 때, 자신만은 결코 그리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험이 닥쳐오자 예수님을 부인하되 저주까지 하는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맹세의 결심보다 더 큰 두려움이 닥치면 맹세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게 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맹세의 무게보다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울 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맹세를 지키지 않습니다. 또, 맹세를 지킴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맹세를 어길 때 얻는 이익이 더 클 때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며 너무 쉽게 맹세를 어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로 인해 이 세상은 맹세조차도 믿을 수 없는 불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교회 직분이나 신앙을 걸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도 거짓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본인의 명예는 물론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형태의 맹세들은 모두 악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5:37).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무분별하게 맹세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진실과 거짓을 밝힘에 있어서도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것들을 끌어들여 구차한 수식어를 달지 말고, 오직 정직한 태도로 ‘예’와 ‘아니오’를 진정성 있고 명료하게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한계를 아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신이 한 약속과 맹세에 대하여 돌아보고, 신실한 믿음의 삶을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이 말씀에는 우리 성도의 삶 가운데에는 형통하고 기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슬픔의 때도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성도라고 하여 마냥 축복만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낮과 밤이 교차하듯이 성도의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고, 사막의 길을 갈 때도 있고, 오아시스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도로서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매우 심각하게, 그것도 명령하는 어투로 권면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고난과 슬픔을 당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자기 연민이나 원망,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형통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기보다는 자기 자랑에 빠지거나 교만, 안일에 빠져 오히려 하나님을 잊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이 말씀을 매우 심각한 어투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이 신앙의 기본이 몸에 배도록 계속해서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신앙의 기본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초석이며, 첩경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앙을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14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든 자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함을 받은 장로들은 거절하지 말고 즉시 달려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교회의 장로’는 교회공동체를 대표하고 믿음과 은혜에 있어 신실한 중직자들을 지칭합니다. 그와 더불어, 가능하다면 여러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을 초청하라는 뜻으로도 이해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러한 심방을 통해 한 성도의 고난을 온 교회가 알고,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느 성도가 질병과 같은 고난이나 불행을 당하면 주변의 모든 믿음의 성도들은 그를 위해 한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을 갈라디아서 6:2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쁘고 축하받을 일이 있으면 이를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고난과 불행한 일을 당하면 이를 숨기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행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매 맞았나 하며 오히려 쉬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기쁜 일 당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가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 역시, 기쁜 일 만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가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의 기쁜 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은 때로 무심히 지나쳐도 흠이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지체된 형제자매의 고난과 불행만큼은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점은 교회의 중직자일수록 더욱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중직자일수록 교회 내의 어려운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피고 돌보아야 할 더 큰 책임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한 성도의 고난과 불행은 곧 모든 믿음의 지체들을 한자리에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험을 축복의 신호탄으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하나님의 치유와 기적과 축복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시험과 고난으로 인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시험과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고사하고 만날 수조차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고난을 만났을 때 이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교회에 알리고 교회공동체 역시 이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함께 아파하고 기도함으로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선포하신 가장 기본적인 은혜와 축복의 법칙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우리 교회가 이러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무분별하게 맹세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신앙의 기본자세를 가지되, 성도의 고난과 불행은 믿음의 지체들을 한자리에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 서로를 위해 늘 기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