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설교

8.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다 (욥 3:1~10)

우인택 목사
2025-12-22
조회수 99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충동 속에서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위로하러 와서 밤낮 7일 동안 말없이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긴 침묵이 끝난 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드디어 욥이 말합니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찬송이 아니라 탄식입니다. 욥은 자기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탄식은 믿음의 실패일까요, 아니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믿음의 모습일까요?


  1. 먼저,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극심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넋을 잃고 7일간의 침묵한 욥이, 입을 열어 가장 먼저 한 말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은 믿음이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니라, 고통이 너무 깊어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며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들 중에서 욥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믿음이 있으면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항상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의 이 탄식을 숨김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우지 않았습니다.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흘러나온 욥의 탄식을 믿음이 없는 것으로 단정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평가한 하나님의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이어지는 4절 함께 읽습니다.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욥의 표현이 점점 강해집니다. 자신이 태어나던 그 날이 어두웠다면, 빛이 비치지 않았다면, 자신의 울음소리, 곧 출산의 기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여러분, 욥의 계속되는 탄식의 말들은 고통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음 자체가 괴롭다는 절규입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사람은 고통이 깊어지면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정리된 문장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 질문을 할 힘조차 없습니다. 그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욥의 말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 속에서 그대로 들으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다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절감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사실,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고통받고 있지 않은 것 같이 행하는 것이 오히려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랑도, 자신의 약함도, 자신의 범죄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믿음의 모습입니다.


  3. 이어지는 10절 함께 읽습니다.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욥의 말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습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욥은 이 말을 사람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혼잣말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탄식은 하나님을 떠난 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믿는 자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말할 이유도 없습니다. 들을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욥기의 중요한 교훈입니다. 탄식은 믿음의 반대가 아닙니다. 탄식은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말할 수 있다는 것,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관계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도 무너질 수 있음을 교훈합니다. 신실한 신앙인도 탄식을 하고, 그 탄식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의 입에서 감사보다 탄식이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분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멋진 말로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탄식과 절규로 기도할 때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찬송이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처럼, 욥처럼,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마음의 깊은 절규와 탄식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극심한 아픔을 돌아보시고 선하신 응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너무 아플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닫지 않고 탄식이라도 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찬송이 나오지 않을 때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월요일: 엄지손가락 기도, 번제의 삶> 엄지는 심장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먼저,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 그리고 가족, 형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지 그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번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 온라인 헌금 계좌 : 9002-1941-6987-1 

   (새마을금고 / 동탄영락교회) 


우인택 목사 /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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