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11.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12.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13.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14. 그들은 성을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 같이 내게로 달려드니
15.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왕 같은 대접을 받던 존귀한 자리에서 한순간에 추락하여,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비천하게 여겨지던 자들에게까지 비웃음을 당하는 수치를 겪게 된 욥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두 번째 단락인데, 욥이 당하는 고난의 강도가 앞부분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그들이 멀리서 욥을 비웃는 수준이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욥 앞에 몰려와 집단적인 폭력으로 욥의 삶을 완전히 짓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욥은 철저한 고독의 자리에 홀로 서 있습니다.
1. 먼저, 9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노래로 조롱한다’라는 것은, 악인들이 욥이 당한 재앙을 노래로 만들어 흥얼거리며 부르고 다녔다는 뜻입니다. 욥의 비극과 고통이 세상 사람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언어폭력에 그치지 않고 10절에, 욥에게 다가와 얼굴에 직접 침을 뱉는 악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사회에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가장 극한의 모욕이자 저주의 표시였습니다. 욥은 지금 인격 살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이 당한 이 수치는 욥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가정이 무너지면, 위로해 주기는커녕 그것을 하나의 가십거리로 만들어 노래로 조롱하듯 소문을 퍼뜨립니다. 평소에 친했던 사람들조차 행여나 자기에게 해가 될까 하여 멀리 도망칩니다. 은근히 무시하며 침을 뱉는 것 같은 인격적인 모욕을 줍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찢어지고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을 향한 악한 소문과 비방이 들려오면 분노가 치밀어 잠을 자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억울함에 치를 떱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욥에게서 예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과 골고다 언덕에서 당하셨던 수치가 오늘 본문과 거의 일치합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며 왕이라고 노래하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조롱과 침 뱉음 앞에 상처받아 우는 저와 여러분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모든 수치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나를 향해 침을 뱉고 조롱의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과 맞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먼저 그 모욕을 당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조롱은 내 영혼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존귀하다 하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조롱 앞에서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하며 세상의 조롱을 이기고 그들까지 구원해 내는 복음의 일꾼으로 우뚝 서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지금 욥은 자신을 조롱하고 얼굴에 침을 뱉는 악인들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고난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욥은 지난날 자신의 삶이 형통했을 때를 회상하며 29:20에서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라며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와 반대되는 상황에 있게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원인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활시위를 느슨하게 늘어뜨려 버리셨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곤고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전에는 욥의 권위와 거룩함 앞에 굴레를 쓴 듯이 꼼짝 못 하던 악한 무리들이, 하나님이 욥의 활시위를 꺾으신 것을 눈치채자마자 자기 목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폭도로 돌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그 무리들이 떼로 일어나 욥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덫을 놓고 길을 겹겹이 에워싸며 사냥개처럼 압박해 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경우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악한 사람들이 대적하여 길을 에워쌀 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환경이라는 눈앞의 파도만 바라보며 낙심하곤 합니다. “저 사람들이 왜 나를 공격할까, 왜 내 발에 덫을 놓을까”라며 사람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욥은 무리들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삶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늘어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악한 무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닥쳐올 때, 나를 대적하는 원수들과 맞서 싸우느라 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나를 곤고하게 하시고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 앞에 먼저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힘을 빼신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쉽게 부러질 내 의의 화살을 내려놓고, 나의 영원한 방패와 병기가 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화살을 잡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나를 에워싼 모든 원수의 덫을 깨뜨리시고 마침내 승리케 하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욥은 악인들이 자신이 걸어가는 의의 길을 헐어버리고, 재앙을 빠르게 재촉하는 데도 도울 자가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29장에서 욥이 형통할 때, 그는 애곡하는 자의 위로자가 되어 주었는데, 정작 자신이 무너지자 그의 곁에는 단 한 명의 도울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14절에, 대적들이 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부서진 성벽 사이로 성난 군대처럼 몰려듭니다. 그로 인해 15절에, 죽음의 공포가 욥을 에워쌌고, 욥이 평생 쌓아 올린 모든 품위를 단숨에 날려 버리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파산되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 고백과 탄식은, 사방이 가로막힌 극심한 고난 속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철저한 고립과 영적인 공포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대적들이 내 길을 헐어버리고 성벽을 파괴하듯 달려들 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의 성벽, 물질의 성벽, 인간관계의 성벽이 파괴되어 그 틈새로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에워쌀 때가 올 수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는 기가 막힌 고독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평생 지켜온 성도의 품위와 자존심이 짓밟히게 되는 때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약속의 시간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조력자가 끊어지고 내 편이 아무도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눈을 들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도울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도울 자가 아무도 없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제자들은 도망쳤고, 공포의 군대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울 자 없는 무덤 속에서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구원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 때 당하는 고립은 버림받은 저주가 아니라, 인간의 도움을 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기적의 통로를 기억하며 고난과 고립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오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위해 십자가를 견디시고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내 삶의 팽팽하던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신 분도, 곤고함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세상의 부러질 탐욕과 안일의 활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11.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12.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13.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14. 그들은 성을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 같이 내게로 달려드니
15.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왕 같은 대접을 받던 존귀한 자리에서 한순간에 추락하여,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비천하게 여겨지던 자들에게까지 비웃음을 당하는 수치를 겪게 된 욥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두 번째 단락인데, 욥이 당하는 고난의 강도가 앞부분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그들이 멀리서 욥을 비웃는 수준이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욥 앞에 몰려와 집단적인 폭력으로 욥의 삶을 완전히 짓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욥은 철저한 고독의 자리에 홀로 서 있습니다.
1. 먼저, 9절 함께 읽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노래로 조롱한다’라는 것은, 악인들이 욥이 당한 재앙을 노래로 만들어 흥얼거리며 부르고 다녔다는 뜻입니다. 욥의 비극과 고통이 세상 사람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언어폭력에 그치지 않고 10절에, 욥에게 다가와 얼굴에 직접 침을 뱉는 악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사회에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가장 극한의 모욕이자 저주의 표시였습니다. 욥은 지금 인격 살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이 당한 이 수치는 욥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가정이 무너지면, 위로해 주기는커녕 그것을 하나의 가십거리로 만들어 노래로 조롱하듯 소문을 퍼뜨립니다. 평소에 친했던 사람들조차 행여나 자기에게 해가 될까 하여 멀리 도망칩니다. 은근히 무시하며 침을 뱉는 것 같은 인격적인 모욕을 줍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찢어지고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을 향한 악한 소문과 비방이 들려오면 분노가 치밀어 잠을 자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억울함에 치를 떱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욥에게서 예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과 골고다 언덕에서 당하셨던 수치가 오늘 본문과 거의 일치합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며 왕이라고 노래하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조롱과 침 뱉음 앞에 상처받아 우는 저와 여러분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모든 수치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나를 향해 침을 뱉고 조롱의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과 맞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먼저 그 모욕을 당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조롱은 내 영혼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존귀하다 하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조롱 앞에서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하며 세상의 조롱을 이기고 그들까지 구원해 내는 복음의 일꾼으로 우뚝 서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1절 함께 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지금 욥은 자신을 조롱하고 얼굴에 침을 뱉는 악인들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고난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욥은 지난날 자신의 삶이 형통했을 때를 회상하며 29:20에서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라며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와 반대되는 상황에 있게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원인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활시위를 느슨하게 늘어뜨려 버리셨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곤고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전에는 욥의 권위와 거룩함 앞에 굴레를 쓴 듯이 꼼짝 못 하던 악한 무리들이, 하나님이 욥의 활시위를 꺾으신 것을 눈치채자마자 자기 목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폭도로 돌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그 무리들이 떼로 일어나 욥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덫을 놓고 길을 겹겹이 에워싸며 사냥개처럼 압박해 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경우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악한 사람들이 대적하여 길을 에워쌀 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환경이라는 눈앞의 파도만 바라보며 낙심하곤 합니다. “저 사람들이 왜 나를 공격할까, 왜 내 발에 덫을 놓을까”라며 사람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욥은 무리들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삶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늘어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악한 무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닥쳐올 때, 나를 대적하는 원수들과 맞서 싸우느라 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나를 곤고하게 하시고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 앞에 먼저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힘을 빼신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쉽게 부러질 내 의의 화살을 내려놓고, 나의 영원한 방패와 병기가 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화살을 잡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를 통해, 나를 에워싼 모든 원수의 덫을 깨뜨리시고 마침내 승리케 하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13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욥은 악인들이 자신이 걸어가는 의의 길을 헐어버리고, 재앙을 빠르게 재촉하는 데도 도울 자가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29장에서 욥이 형통할 때, 그는 애곡하는 자의 위로자가 되어 주었는데, 정작 자신이 무너지자 그의 곁에는 단 한 명의 도울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14절에, 대적들이 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부서진 성벽 사이로 성난 군대처럼 몰려듭니다. 그로 인해 15절에, 죽음의 공포가 욥을 에워쌌고, 욥이 평생 쌓아 올린 모든 품위를 단숨에 날려 버리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파산되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 고백과 탄식은, 사방이 가로막힌 극심한 고난 속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철저한 고립과 영적인 공포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대적들이 내 길을 헐어버리고 성벽을 파괴하듯 달려들 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의 성벽, 물질의 성벽, 인간관계의 성벽이 파괴되어 그 틈새로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에워쌀 때가 올 수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는 기가 막힌 고독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평생 지켜온 성도의 품위와 자존심이 짓밟히게 되는 때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약속의 시간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조력자가 끊어지고 내 편이 아무도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눈을 들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도울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도울 자가 아무도 없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제자들은 도망쳤고, 공포의 군대들이 예수님의 생명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울 자 없는 무덤 속에서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구원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 때 당하는 고립은 버림받은 저주가 아니라, 인간의 도움을 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기적의 통로를 기억하며 고난과 고립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오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위해 십자가를 견디시고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내 삶의 팽팽하던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신 분도, 곤고함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세상의 부러질 탐욕과 안일의 활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일: 중지손가락 기도, 화목제의 삶>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녁에 있을 수요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화목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