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2. 그들의 기력이 쇠잔하였으니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3.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4.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5.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6.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7.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8.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욥이 과거에 누렸던 놀라운 축복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욥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고, 왕과 같은 권위로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참된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러나 이제는’이라고 시작합니다. 영광의 정점에 있던 자신이 한순간에 몰락하여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참혹한 현실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노인들조차 욥을 공경해서 욥이 나타나면 자리에서 일어서서 욥을 맞이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나타나면 두려워서 숨던 젊은 자들까지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는다고 토로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유력한 가문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하여 욥은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신뢰를 받지 못한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는 입니다. 목자가 양을 지키기 위해 키우는 짐승인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던 비천한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받던 낙오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을 당하자, 평소 욥에게 큰 도움을 받던 그들이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연약해지게 되었을 때 겪게 될 잔인한 현실을 보게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돈이 많고, 좋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내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존경하는 척합니다. 그러나 내 사업이 부도가 나고, 내 몸에 질병이 찾아와 내 보금자리가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주저 없이 안면을 바꾸어 버립니다. 평소에는 나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자들이, 내가 무너진 것을 보며 뒤에서 수군거리고 무시하며 비웃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어 부자가 되었다고 어깨에 힘주더니 고소하다, 인과응보야”라며 잔인하게 비웃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칭찬과 평판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남들이 나를 부자라고 불러주고, 대단한 집사님, 장로님이라고 치켜세워 줄 때 예수 믿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 합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위기를 만나 남들이 비웃기 시작하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와 평판은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평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공의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비웃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지 마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비웃음과 수치를 묵묵히 당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하나님이 내 순전함을 기억하고 계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비웃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존감 있는 성도가 되기를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욥을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해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온몸이 파리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빛 한 조각 없는 캄캄하고 메마른 광야였습니다. 그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흙이 묻어 있는 풀뿌리를 씹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 그들은 그것마저 구할 수 없게 되자 척박한 광야의 염분이 많은 늪지에서 자라는 ‘짠 나물’을 꺾어 허기를 달랬습니다. 심지어 ‘대싸리 뿌리’, 곧 불을 피우거나 빗자루 제작에 사용되는 거칠고 질긴 ‘로뎀나무 뿌리’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목숨을 연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짠 나물이나 대싸리 뿌리는 보통 때는 먹지 않고 극심한 기근이 왔을 때 마지막으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고난을 당하자 이러한 것을 먹고 사는 비천한 자들까지 일어나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느냐, 주일에 교회 갈 시간에 주식 공부나 해라, 적당히 사기 치고 편법을 써야 부자가 되지 왜 고지식하게 사느냐라며 우리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우리를 보며 비웃습니다.
그때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비웃는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명품 옷을 입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닐지 몰라도, 그 영혼은 하나님이 없기에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게 메말라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 때문에 세상의 쾌락이라는 짠 나물과 대싸리 뿌리를 꺾어 먹으며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그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마른 흙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과 천국의 만나를 먹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나를 비웃는 세상을 향해 같이 분노하거나 맞서 싸우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그들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이 조롱자들은 법과 질서를 위반하여 사회로부터 쫓겨난 도둑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6절에, 짐승들이나 사는 골짜기와 흙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8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이는 욥을 비웃는 자들이 본질적으로 어떤 자들인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미련한’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대하여 무감각한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이라는 표현은 ‘무가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가치도 남기지 못하고 사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 공동체인 고향 땅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당해 낮아지자 그러한 자들까지 몰려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욥의 고백에서처럼, 우리의 신앙을 비웃는 세상 사람들은 겉보기에 힘이 세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본질은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난 도둑에 불과합니다. 어두운 골짜기와 흙구덩이 같은 죄악의 감옥 갇힌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자들, 즉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무가치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일시적인 득세와 비웃음 앞에 신앙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떼로 몰려와 나를 흔들 때 그들의 비웃음은 잠깐일 뿐입니다.
반면에 저와 여러분은 비록 지금 고난을 당해 몸은 아프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성문 밖으로 쫓겨나 침침한 골짜기 같은 골고다 언덕에서 비웃음 속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승리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겪는 비웃음은 머잖아 영광의 부활로 뒤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세상의 조롱 앞에서 믿음을 지켜내어 마침내 최후 승리를 거두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와 비웃음을 당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코람데오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나 영적인 기근으로 메마른 흙을 씹으며 방황하는 그들의 실상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를 통해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성도로서의 선한 삶을 묵묵히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화요일: 검지손가락 기도> 검지는 무엇을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교사들, 이 땅의 선생님들,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성결함으로 모든 삶을 드리는 ‘소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2. 그들의 기력이 쇠잔하였으니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3.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4.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5.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6.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7.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8.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욥이 과거에 누렸던 놀라운 축복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욥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고, 왕과 같은 권위로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참된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러나 이제는’이라고 시작합니다. 영광의 정점에 있던 자신이 한순간에 몰락하여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참혹한 현실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1. 먼저, 1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노인들조차 욥을 공경해서 욥이 나타나면 자리에서 일어서서 욥을 맞이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나타나면 두려워서 숨던 젊은 자들까지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는다고 토로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유력한 가문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하여 욥은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신뢰를 받지 못한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는 입니다. 목자가 양을 지키기 위해 키우는 짐승인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던 비천한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받던 낙오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을 당하자, 평소 욥에게 큰 도움을 받던 그들이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연약해지게 되었을 때 겪게 될 잔인한 현실을 보게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돈이 많고, 좋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내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존경하는 척합니다. 그러나 내 사업이 부도가 나고, 내 몸에 질병이 찾아와 내 보금자리가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주저 없이 안면을 바꾸어 버립니다. 평소에는 나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자들이, 내가 무너진 것을 보며 뒤에서 수군거리고 무시하며 비웃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어 부자가 되었다고 어깨에 힘주더니 고소하다, 인과응보야”라며 잔인하게 비웃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칭찬과 평판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남들이 나를 부자라고 불러주고, 대단한 집사님, 장로님이라고 치켜세워 줄 때 예수 믿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 합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위기를 만나 남들이 비웃기 시작하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와 평판은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평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공의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비웃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지 마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비웃음과 수치를 묵묵히 당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하나님이 내 순전함을 기억하고 계신다면, 세상의 그 어떤 비웃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자존감 있는 성도가 되기를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3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욥을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해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온몸이 파리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빛 한 조각 없는 캄캄하고 메마른 광야였습니다. 그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흙이 묻어 있는 풀뿌리를 씹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 그들은 그것마저 구할 수 없게 되자 척박한 광야의 염분이 많은 늪지에서 자라는 ‘짠 나물’을 꺾어 허기를 달랬습니다. 심지어 ‘대싸리 뿌리’, 곧 불을 피우거나 빗자루 제작에 사용되는 거칠고 질긴 ‘로뎀나무 뿌리’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목숨을 연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짠 나물이나 대싸리 뿌리는 보통 때는 먹지 않고 극심한 기근이 왔을 때 마지막으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고난을 당하자 이러한 것을 먹고 사는 비천한 자들까지 일어나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느냐, 주일에 교회 갈 시간에 주식 공부나 해라, 적당히 사기 치고 편법을 써야 부자가 되지 왜 고지식하게 사느냐라며 우리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우리를 보며 비웃습니다.
그때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비웃는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명품 옷을 입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닐지 몰라도, 그 영혼은 하나님이 없기에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게 메말라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 때문에 세상의 쾌락이라는 짠 나물과 대싸리 뿌리를 꺾어 먹으며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그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마른 흙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과 천국의 만나를 먹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나를 비웃는 세상을 향해 같이 분노하거나 맞서 싸우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그들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5절 함께 읽습니다.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이 조롱자들은 법과 질서를 위반하여 사회로부터 쫓겨난 도둑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6절에, 짐승들이나 사는 골짜기와 흙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8절 함께 읽습니다.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이는 욥을 비웃는 자들이 본질적으로 어떤 자들인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미련한’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대하여 무감각한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이라는 표현은 ‘무가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가치도 남기지 못하고 사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 공동체인 고향 땅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당해 낮아지자 그러한 자들까지 몰려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욥의 고백에서처럼, 우리의 신앙을 비웃는 세상 사람들은 겉보기에 힘이 세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본질은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난 도둑에 불과합니다. 어두운 골짜기와 흙구덩이 같은 죄악의 감옥 갇힌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자들, 즉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무가치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일시적인 득세와 비웃음 앞에 신앙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떼로 몰려와 나를 흔들 때 그들의 비웃음은 잠깐일 뿐입니다.
반면에 저와 여러분은 비록 지금 고난을 당해 몸은 아프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성문 밖으로 쫓겨나 침침한 골짜기 같은 골고다 언덕에서 비웃음 속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승리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겪는 비웃음은 머잖아 영광의 부활로 뒤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세상의 조롱 앞에서 믿음을 지켜내어 마침내 최후 승리를 거두게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와 비웃음을 당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코람데오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나 영적인 기근으로 메마른 흙을 씹으며 방황하는 그들의 실상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를 통해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성도로서의 선한 삶을 묵묵히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화요일: 검지손가락 기도> 검지는 무엇을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교사들, 이 땅의 선생님들,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성결함으로 모든 삶을 드리는 ‘소제의 삶’을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