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의 친구들은 겉으로는 욥을 위로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욥의 장막이 무너진 것을 보며 은근히 정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며 계속해서 욥을 악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욥은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악인인 것은 아니라며,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상고하면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위로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먼저, 27~28절에서 욥은 욥의 친구들이 욥의 무너진 가문과 집을 보며 그것이 죄의 증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욥은 그들의 교만한 확신을 깨뜨리기 위해 29절에 한 가지 반문을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여기에서 ‘길 가는 사람’은 단순히 동네 행인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세상의 실상을 많이 경험한 ‘노련한 여행가나 무역상’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욥의 이 말은 “너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탁상공론을 하지만, 넓은 세상을 두루 다닌 사람들에게 가서 한번 물어봐라. 그들이 뭐라고 증언하더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0절 함께 읽습니다.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이 구절의 조금 어렵게 번역되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아라.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셔도, 항상 살아 남는 사람은 악한 자라고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세상을 두루 다녀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악인들은 재난의 날이 와도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면제해 주시거나 묵인해 주셔서 안전하게 남겨지고, 진노의 폭풍이 불어와도 그들에게는 비껴간다더라”라는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좁은 생각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악한 자들이 재앙을 요리조리 피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번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논리가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현상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그에게 숨긴 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악인이 당장 심판받지 않고 재앙을 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의 때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에게 알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 인과응보의 논리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깊은 뜻에 대하여 무릎으로 물으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믿고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도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주어진 고난을 헤쳐나가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31~33절에서 욥은 악인들의 권세가 죽음의 순간, 그리고 죽음 이후에까지 얼마나 화려하게 이어지는지 탄식합니다.
31절 함께 읽습니다.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세상의 권력자나 재벌 앞에서는 누구도 그 사람의 죄를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하여 복수하거나 갚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악한 권력을 누리던 악인이 죽으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친구들의 말대로라면 비참하게 길바닥에 버려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32~33절 함께 읽습니다.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악인이 죽을 때, 화려한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상여 뒤를 따르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게다가 그의 무덤은 대리석으로 호화롭게 지어지고, 도둑이 무덤을 도굴하지 못하도록 지킵니다. 그는 아주 편안하게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며 잠듭니다.
욥이 이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유는 악인은 비참하게 망하고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친구들이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죽을 때도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고 큰 묘지에 묻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욥의 장막이 무너지고 욥의 자녀들이 비참하게 죽었다고 해서 욥을 악인이라 단정 짓는 친구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욥은 말합니다. 34절 함께 읽습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인간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모순을 다 증명한 욥은,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친구들을 향해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라고 강력하게 질타합니다.
친구들은 고난당하는 욥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이라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네 장막을 다시 번성케 하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보다 더 은혜롭고 신앙적인 격려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것은 가짜 위로요,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로 밑바닥에는 “너는 죄인이고, 우리는 의인이다”라는 정죄와 교만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무조건 ‘죄’로만 단정 짓고 하는 말은, 아무리 성경적인 용어를 썼을지라도 고난 당하는 이에게는 영혼을 죽이는 헛된 폭력이자 거짓말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 욥의 이 충고를 듣고, 우리는 우리의 위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성도에게 “기도하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라며 너무 쉽게 하는 위로는, 오히려 당사자를 무시하는 말이 되고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신앙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원했던 위로는 가식적인 정답이 아니라, 삶의 깊은 모순 속에서도 함께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아파해 주는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 하려는 교만을 버리고, 상처 입은 지체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는 참된 위로자가 되게 하옵소서”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인이 고난받을 수 있고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있는지 돌아보고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라고 말하는 욥의 탄식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자만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내 생각의 잣대로 상처를 주었던 가식적인 위로와 거짓된 입술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한, 악인들이 세상에서 재앙을 피하고 화려한 무덤에 묻히는 모순을 보더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비록 세상에서 초라하게 살지라도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믿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속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금요일: 새끼손가락 기도> 소지, 곧 새끼손가락은 가장 작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소년소녀가장, 독거어르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의 전반적인 기도 제목과 주일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이웃과의 삶에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속건제의 삶’을 결단합니다.
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의 친구들은 겉으로는 욥을 위로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욥의 장막이 무너진 것을 보며 은근히 정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며 계속해서 욥을 악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욥은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악인인 것은 아니라며,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상고하면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위로에 대하여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먼저, 27~28절에서 욥은 욥의 친구들이 욥의 무너진 가문과 집을 보며 그것이 죄의 증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욥은 그들의 교만한 확신을 깨뜨리기 위해 29절에 한 가지 반문을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여기에서 ‘길 가는 사람’은 단순히 동네 행인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세상의 실상을 많이 경험한 ‘노련한 여행가나 무역상’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욥의 이 말은 “너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탁상공론을 하지만, 넓은 세상을 두루 다닌 사람들에게 가서 한번 물어봐라. 그들이 뭐라고 증언하더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0절 함께 읽습니다.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이 구절의 조금 어렵게 번역되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아라.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셔도, 항상 살아 남는 사람은 악한 자라고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세상을 두루 다녀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악인들은 재난의 날이 와도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면제해 주시거나 묵인해 주셔서 안전하게 남겨지고, 진노의 폭풍이 불어와도 그들에게는 비껴간다더라”라는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좁은 생각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악한 자들이 재앙을 요리조리 피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번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논리가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현상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그에게 숨긴 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악인이 당장 심판받지 않고 재앙을 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의 때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에게 알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 인과응보의 논리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깊은 뜻에 대하여 무릎으로 물으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믿고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도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주어진 고난을 헤쳐나가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부탁드립니다.
2. 이어지는 31~33절에서 욥은 악인들의 권세가 죽음의 순간, 그리고 죽음 이후에까지 얼마나 화려하게 이어지는지 탄식합니다.
31절 함께 읽습니다.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세상의 권력자나 재벌 앞에서는 누구도 그 사람의 죄를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하여 복수하거나 갚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악한 권력을 누리던 악인이 죽으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친구들의 말대로라면 비참하게 길바닥에 버려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32~33절 함께 읽습니다.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악인이 죽을 때, 화려한 장례 행렬이 이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상여 뒤를 따르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게다가 그의 무덤은 대리석으로 호화롭게 지어지고, 도둑이 무덤을 도굴하지 못하도록 지킵니다. 그는 아주 편안하게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며 잠듭니다.
욥이 이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유는 악인은 비참하게 망하고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친구들이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죽을 때도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고 큰 묘지에 묻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욥의 장막이 무너지고 욥의 자녀들이 비참하게 죽었다고 해서 욥을 악인이라 단정 짓는 친구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욥은 말합니다. 34절 함께 읽습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인간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모순을 다 증명한 욥은,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친구들을 향해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라고 강력하게 질타합니다.
친구들은 고난당하는 욥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이라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네 장막을 다시 번성케 하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보다 더 은혜롭고 신앙적인 격려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것은 가짜 위로요,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로 밑바닥에는 “너는 죄인이고, 우리는 의인이다”라는 정죄와 교만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무조건 ‘죄’로만 단정 짓고 하는 말은, 아무리 성경적인 용어를 썼을지라도 고난 당하는 이에게는 영혼을 죽이는 헛된 폭력이자 거짓말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 욥의 이 충고를 듣고, 우리는 우리의 위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성도에게 “기도하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라며 너무 쉽게 하는 위로는, 오히려 당사자를 무시하는 말이 되고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신앙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원했던 위로는 가식적인 정답이 아니라, 삶의 깊은 모순 속에서도 함께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아파해 주는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실 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 하려는 교만을 버리고, 상처 입은 지체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는 참된 위로자가 되게 하옵소서”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인이 고난받을 수 있고 악인이 형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있는지 돌아보고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너희의 위로는 헛되고 거짓되었다”라고 말하는 욥의 탄식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자만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내 생각의 잣대로 상처를 주었던 가식적인 위로와 거짓된 입술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한, 악인들이 세상에서 재앙을 피하고 화려한 무덤에 묻히는 모순을 보더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비록 세상에서 초라하게 살지라도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믿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속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금요일: 새끼손가락 기도> 소지, 곧 새끼손가락은 가장 작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소년소녀가장, 독거어르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의 전반적인 기도 제목과 주일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가지 제사를 삶에 적용하여, 이웃과의 삶에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속건제의 삶’을 결단합니다.